1. 서문
[아끼고... 사랑하고... 가꾸어라. 너와 같은, 그리고 닮지 않은 존재들을... 네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그리고, 하루하루 숨쉬고 있는 너 자신을...차이는 이해에 의해 사라질 것이고, 그것이 바로 너와 같은 존재가 이 세계에 오게 된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의 세계는... 바로 너에 의해 바뀌게 될 것이다.]
쓸데없이 웅장하다
누님하악하악 그렇게 안 봤는데 음침한 여자였네...
안녕하십니까, 라일페네스입니다. 메인스트림 보스 열전 제 2편입니다. 사실 동일한 주제를 가진 글을 연속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서문이 필요할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 내용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 크로우 크루아흐(龍)
크로우 크루아흐, 또는 크롬 크루아히(Crom Cruach)는 켈트 신화의 끝판왕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겹쳐진 바퀴'라던가, '무덤의 초승달'이라고도 불리는 크로우 크루아흐에 대한 묘사는 대놓고 악신惡神이며, 일반적인 켈트 신화의 신들과는 달리 인격신도 아닙니다. 누아자는 모이투라 평원에서 키홀의 전대 마신이었던 사안의 발로르가 소환한 크로우 크루아흐와 맞붙어, 그의 검 클라우 솔라스로 크로우 크루아흐를 말 그대로 찢어발겨버렸습니다. 하지만 사실 크로우 크루아흐의 정체는 암흑 그 자체였습니다. 누아자가 찢어발긴 것은 암흑이 뒤집어 쓰고 있던 뱀의 껍질에 불과했던 것이죠. 누아자는 암흑에 휩싸여 살해당하고, 누아자의 사후 투아하 데 다난의 왕은 루 라바다가 이어받게 됩니다.
크로우 크루아흐의 이름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피 묻은 머리'라거나 '언덕의 제왕', 혹은 '피투성이의 사악한 자' 등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어느쪽이건 간에 그리고 온건한 뜻은 아니니 크로우 크루아흐의 성격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켈트 신화의 신들은 대부분 인격신으로,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들은 신이라기보단 영웅에 가깝습니다.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 인간을 신으로 추대했다, 라는 느낌이죠. 하지만 크로우 크루아흐는 암흑 그 자체로서, 말 그대로 자연 혹은 운명 그 자체를 상징하는 최고신으로 보입니다. 그에 대한 켈트 민족의 공포는 그야말로 절대적이었으므로, 그들은 자식들을 바치는 끔찍한 인신공양까지 하면서 크로우 크루아흐를 숭배했습니다. 이 행사는 무려 5세기가 되어 크리스트 교가 전파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실제로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크로우 크루아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1. 기원
그분의 존안
생명력 : 12,000
방어/보호 : ?/?
공격력 : 900~1700
전투력 : 9,999
경험치 : 8000
속성 : 무(無)
마비노기의 크로우 크루아흐는 G3의 최종보스이자 최종보스가 아닙니다. 실제로 밀레시안이 싸우고, 파괴한 것은 크로우 크루아흐 본인.... 아니, 본룡이 아니라 크로우 크루아흐의 모습을 따서 만들어진 석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가 아니었어도 그 강력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스펙만 딱 봐도 아시겠지만, 글라스 기브넨이나 타바르타스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입니다. 전투력은 9,999로 글라스 기브넨과 동일하지만 생명력은 무려 2.4배에 최고 대미지는 11배가 넘습니다. 이건 뭐 비교하기가 미안해질 정도네요.
마비노기의 크로우 크루아흐는 사실 원전에 매우 충실한 면이 있습니다. 글라스 기브넨처럼 젖소가 결전병기로 둔갑한 것도 아니고, 타바르타스처럼 없던 게 갑툭튀한 것도 아니고, 에스라스처럼 드루이드가 네크로맨서가 된 것도 아니죠. 다만 원전에서는 거대한 뱀 정도로 묘사되었던 것이 드래곤으로 변하긴 했습니다만, 그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사안의 발로르가 제 2차 모이투라 전투 당시 크로우 크루아흐를 소환하여 은팔의 누아자를 살해한 것은 유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언급은 없어서, 적의 우두머리를 없앤다는 소환의 목적을 달성한 뒤에는 돌아가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고작 그정도의 정보가 고작이었던 G1 당시에는 꽤나 무시무시한 존재였고, 언젠가는 나올 것만 같은 보스 2순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순위요? 그야 물론 키홀 아니었겠습니까.
그리고 G3가 되자, 크로우 크루아흐에 대한 더 많은 사실이 공개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은, 루에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크로우 크루아흐에게 '제물'로 바쳐진 존재였다는 점입니다. 루에리의 아버지였던 이멘 마하의 영주가 크로우 크루아흐를 소환하여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언젠가 크로우 크루아흐를 불러낼 심산으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첫번째 아이를 드래곤의 제물로 바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대외적으로는 영주의 아들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아니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자라던 루에리는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이멘 마하를 떠나 방랑 전사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아저씨가 된다 이거지.....
하여튼 그렇게 루에리의 과거에 대한 떡밥 정도로 끝나는가 했는데, 실제로는 G3의 최종보스 포지션이었다는 충격적인 전개가 펼쳐집니다. 당연히 많은 유저들이 벙찔 수 밖에 없었지요. 사실 리아 파르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플레이어들도 NPC들도 모두 키홀의 목적은 마하의 부활일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인간을 증오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하를 리아 파르를 통해 부활시켜, 인간들을 몰살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라는 것이 모두의 예상이었고, 이야기 자체도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크로우 크루아흐에 대한 떡밥은 그저 루에리가 얼마나 불쌍한 인물인가에 대한 설정이라고 생각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리아 파르를 파괴하기 위해 바올 던전에 잠입한 플레이어는 자신이 실제로 파괴한 것이 리아 파르가 아니라 그저 크로우 크루아흐를 가둬둔 봉인일 뿐이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엥? 마하가 아니라? 사실 이 부분의 연출력이 조금만 더 강렬했더라면, 플레이어들이 느낄 충격은 훨씬 배가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연출이 너무 담담하게 '사실 마하 아니고 크로우 크루아흐임 ㄳ' 정도인지라.... 플레이어들 중에선 별 충격도 받지 않고 '아 아니었네'하고 넘어가신 분도 꽤 있으실 겁니다. 아쉬운 일이죠.
어찌됐던, 이야기의 전개 자체는 꽤 훌륭한 서술 트릭이었습니다. 많은 NPC들은 크로우 크루아흐가 파괴의 마신이니, 용의 모습을 한 죽음의 신이니 하는 말을 계속해서 해 왔지만 플레이어들은 그것이 크로우 크루아흐의 무시무시함을 표현하기 위한 과장된 묘사일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필자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리아 파르가 품고 있는 고대의 지혜는 신을 강림시키는 능력이었습니다. 만일 이 신의 강림이라는 프로세스의 전제가 신의 육체가 될 그릇을 준비하는 것 말고 하나 더 있다고 하면 어떨까요? 예, 바로 제물입니다. 리아 파르가 제물을 바치는 것에 의해 그 제물에 합당한 신을 소환하는 능력이 있다면.....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크로우 크루아흐가 진짜로, 신이라는 것이죠.
그에 대한 파괴의 마신이라던가, 암흑의 화신이라던가 하는 묘사는 사실 과장도 뭣도 아니었습니다. 크로우 크루아흐는 진짜로 신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리아 파르의 힘에 이끌려 소환될 리가 없었던 겁니다. 크로우 크루아흐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반호르의 브라이스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세계로부터 온 파괴신'이라고. 그 말은 정말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이미 이후의 전개에 대해 설정이 어느 정도 짜여있었다고 봐도 좋겠지요.
2-2. 본질
어찌 되었든 결국 변심한 루에리의 활약에 의해 크로우 크루아흐의 부활은 저지당하고, 모두들 안심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키홀은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혹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 루에리가 크로우 크루아흐에게 제물로 바쳐진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를 매개체로 삼아 크로우 크루아흐의 모습을 한 석상을 부활시키게 됩니다.
어쨌든 키홀의 기만전략은 멋지게 먹혀들어가, 처음으로 계획 성공을 눈앞에 두게 됩니다. 심지어는 모리안조차도 당황한 나머지 여기서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르게 되지요.
하지만 결국 키홀이 소환한 것은 크로우 크루아흐 본신이 아니라 그의 모습을 딴 석상이었습니다. 물론 석상이라고는 해도 그 무시무시함은 이미 위에서 말한 대로라서 G3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상상초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는 수준이었습니다. '잡으라고 만든 거냐'라는 원성까지도 간간이 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정말로 죽을 힘을 다 해서 겨우 석상을 물리치고 이겼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바로 다음 장면에, 크로우 크루아흐 본신이 나타나는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와 이젠 진짜 뒤졌다' 라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등장한 크로우 크루아흐는 전혀 적대적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사악하지도 않고, 지적이고 온화한 모습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것 역시 데브캣이 준비해 둔 반전이라고 해야 할 테지요. 본래의 켈트 신화에서는 악신이자 어둠 그 자체로 불렸던 크로우 크루아흐가 마비노기에서는 지적이고 온화한 모습이라니. 하하. 어쨌든 제물을 바쳐서 소환한 것이 본신이 아닌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성격의 크로우 크루아흐가 키홀에게 동조하여 인간을 멸망시키려 할 리가 없기 때문에, 키홀은 굳이 본신을 소환해 조종하지 않아도 그 힘을 일부 가지고 있는 석상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요.
연장선상으로 생각해 보면, 사안의 발로르가 소환했다던 크로우 크루아흐 역시 본신은 아니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어찌되었든 석상만으로도 충분히 무시무시하다는 것에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걸 달랑 밀레시안 3명이 물리칠 것이라고는 꿈도 못 꿨을 테고 말이죠.
소환된 크로우 크루아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대충 알고 있는 듯한 말투로, 플레이어들에게 세계의 진실과 삶에 대한 충고를 해주고, 루에리와 함께 떠나갑니다.
스탭롤이 올라올 때는 정말 숙연해졌다
이 말이 끝나고 올라오는 스탭롤에는 전쟁의 참상, 상처받은 마족들의 모습, 사기꾼과 사기당한 사람으로 보이는 밀레시안들처럼 가볍게만은 볼 수 없는 느낌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게임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몰이해와 차별, 그리고 대립은 존재하며, 그것을 넘어설 때 비로소 진정 낙원이라 부를 수 있는 세계가 올 것이라는 크로우 크루아흐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제작자가 플레이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필자는 그 장면을 보면서 상당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 그랬었습니다.
2-3. 반전
그러나 문제의 G8 '드래곤'에서 언급된 크로우 크루아흐의 실체는 G3에서 쌓아올린 모든 것을 한번에 무너뜨리고 맙니다. G8의 묘사에 의하면 크로우 크루아흐는 신도, 신적인 존재도 아니었고, 그저 드래곤이라는 종족, 그 중에서도 한 분파에 지나지 않는 블루 드래곤 족의 수장이었을 뿐입니다. 신들의 왕이라고 일컬어지던 누아자를 살해하고 파괴의 마신이라며 악명을 떨쳤던 크로우 크루아흐의 무시무시함은 갑자기 수직낙하해버립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리아의 드래곤들은 이리니드의 힘에 의해 이리아 대륙 전토에서 자르딘까지 밀려난 존재들입니다. 이리니드의 저주에 의해 아직까지도 자르딘을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리니드의 저주를 끝내고 다시 이리아 대륙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하는 드래곤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리니드가 뭐 엄청난 힘을 가진 외제(?) 신이었느냐 하면 아닙니다. 이리니드의 정체는 네반이었습니다. 모리안이나 마하, 키홀, 누아자에 비할 때 딱히 뭐 더 대단한 구석도 없는 평범한(.....) 신이었죠. 울라 대륙에선 신들의 왕이 드래곤 한마리에게 순살당했는데, 이리아 대륙에서는 여신 혼자 종족 전체를 몰아냈다는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크로우 크루아흐는 말 그대로, 설정의 변경과 충돌에 의해 희생되어버린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던 신으로서의 위상을 박탈당하고, 무슨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지도 않은 채 크루메나에게 죽어버리고 맙니다. 이전에도 이 사태에 대해 잠깐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G8에 대한 생각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플레임즈 팀장에게는 스토리텔링의 능력이 없었으며, 그 결과 C1으로부터의 연결고리였던 크로우 크루아흐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거되었습니다.
으앙 주금 아윌비백 뭘 달아도 다 맞을 거 같은 마법의 짤방 예감
그것만으로도 슬픈 일이건만, 크로우 크루아흐는 C3에서 또 언급되며 부관참시를 당하기에 이릅니다. 이미 설정이고 나발이고 다 박살이 나버렸는데, 떡하니 제 2차 모이투라 전투 당시의 일을 언급하며 '크로우 크루아흐의 어둠에 먹혀서 클라우 솔라스가 변질되었다'라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니 니네 입으로 크로우 크루아흐는 그냥 블루 드래곤의 수장이라며, 착한 놈이라며. 미확인 정보에 의하면 '클라우 솔라스는 마족의 피를 너무 많이 뒤집어쓴 탓에 폭주한 것이며, 사안의 발로르는 그 폭주를 멈추게 하기 위해 크로우 크루아흐를 소환했고, 소환된 크로우 크루아흐 역시 그 폭주를 막기 위해 누아자 채로 삼켜버렸다' 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이미 C1에서 크로우 크루아흐는 암흑도 뭣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C4가 되자 유물 키트 다 모으면 부활까지 합니다.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을 지경입니다. 솔직히 이쯤 되면 화가 날 정도네요.
2-4. 총평
크로우 크루아흐는 이미 위에서 말한대로, 켈트 신화에 있어서는 끝판왕입니다. 즉 G1때부터 크로우 크루아흐가 간간이 언급되던 것은 결국 언젠가는 크로우 크루아흐가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었고, 아마도 데브캣은 처음 여신강림을 기획할 때부터 제네레이션의 마지막을 크로우 크루아흐로 장식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말하자면 준비된 최종보스라는 것이죠. 사실 아주 사소한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크로우 크루아흐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떡밥은 C1 내에서 전부 소비되었습니다.
C2에서의 등장은 어느 정도 예정되어있던 일입니다만, 사실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차라리 이리아에는 드래곤 종족이 있고, 그 종족의 신이자 왕이 바로 크로우 크루아흐라고 설정했으면 - 즉 지금의 아드니엘의 자리를 크로우 크루아흐가 맡았더라면 - 큰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굳이 골드 드래곤을 등장시킨 이유도 모르겠고, 그렇게 원래의 설정을 뒤집어 가며 자신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를 모욕하는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C1 이후의 설정은 전부 무시하고 C1에만 한정된 이야기를 하자면.... 글라스 기브넨이 마비노기의 시작이라면 크로우 크루아흐는 마비노기의 끝을 상징하는 몬스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라스 기브넨에 비해 유저들이 느낀 충격은 물론 덜하지만 그런 것이 없어도 챕터 1이라는 이야기의 말미를 장식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었으며, 유저들에게 충분히 감명을 주었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C1 한정으로만, 아주 만족스러운 캐릭터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C1 한정이라는 말 자체가 슬픕니다만.
3. 크루메나(紅)
G4,5,6,7을 훅 뛰어넘어, 다음으로 알아볼 제네레이션 보스 몬스터는 바로 크루메나 되겠습니다. 기대하신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겠습니다만, 켈트 신화에서 크루메나라는 이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크루메나라는 이름이 대체 무슨뜻인가 하고 궁금해 하다가 찾긴 했는데... 이게 또 참.....
크루메나(Crumena)는 라틴어로, 돈 혹은 돈주머니라는 뜻입니다. 어이없는 뜻이죠? 허나 노리고 지은 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서양 판타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던전 앤 드래곤에서 레드 드래곤은 그 어떤 드래곤보다 금과 보석에 대한 탐욕이 강하다고 합니다. 메인스트림에 등장하는 크루메나도 실제로는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전형적인 레드 드래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을 떠올려보면 아주 뜬금없는 이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바로 실제 메인스트림에 등장하는 크루메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1. 기원
생명력 : 50,000
방어/보호 : ?/40
공격력 : 15,000+
전투력 : 30,000
경험치 : 20,000
속성 : 화(Fire)
크루메나의 강함은 한마디로 상식 이상입니다. G3의 크로우 크루아흐도 물론 강했습니다만, G4,5,6,7을 거쳐오며 그때 당시와는 차원이 다르게 강해진 플레이어들에게 G8 당시의 크로우 크루아흐의 강함은 그렇게 대단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훨씬 더 크고 강하면서 전투 방식은 완전히 똑같은 레이드 보스 사막 드래곤과 평원 드래곤의 존재 덕분에 파해법도 많이 연구되어 숙련된 플레이어들은 한대도 맞지 않고 물리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있었습니다. 몬스터의 강함은 스펙이 전부가 아닌 것이죠. 특히 마비노기와 같이 액션성이 강한 게임은 더욱 더.
그러나 그런 플레이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새로운 공격 패턴과 스펙을 가지고 등장해 플레이어들 모두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존재가 바로 크루메나였습니다. 포효만으로 펫들을 강제로 소환 해제시키는 위엄이나 파이어볼 브레스가 아닌 제대로 된 파이어 브레스로 플레이어들을 구워대는 모습, 자르딘 지역 전체의 기상마저 변화시켜 번개를 떨구는 위용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마비노기라는 게임 자체가 여타 게임과는 다르기 때문에 클리어 불가라는 소리까지 듣거나 하진 않았습니다만, 등장 초반에는 꽤나 많은 플레이어들의 눈물(과 캐쉬)를 갈취해가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G8 당시엔 아직 나오의 서포트가 살아있던 시기라서 생각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았지만요. 요즘처럼 나오가 '1회 부활 300원'인 시대였다면 욕이란 욕은 평생 먹고도 남을 만큼 받았을 겁니다.
하여튼, 크루메나는 본질적으로 자르딘 지역의 필드 레이드 보스인 레드 드래곤을 그대로 축소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필드 보스 레드 드래곤이 피통만(참고로, 필드 보스인 레드 드래곤의 생명력은 30만)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돌진, 꼬리치기, 낙뢰, 메테오, 포효(펫 강제 소환해제), 파이어 브레스 등 필드 보스가 가지고 있는 기술은 모두 다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대미지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상대하는 입장에선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뭐, 위에서 말한대로 약간의 노력과 아이템들만 있으면 못잡을 정도는 아닙니다. 실제로 필자는 누적레벨 150의 자이언트로 완포 20개와 나오 부활 3~4번 정도만 소비해서 혼자 잡았거든요. 시간이요? 시간은 한 1시간 쯤 걸린 거 같네요..... 적절한 스펙의 인원이 모이면 크게 문제 없이 물리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3-2. 본질
크루메나는 자르딘에 서식하는 드래곤의 종족들 중 레드 드래곤의 수장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드래곤의 종족은 레드, 블루, 화이트, 골드, 블랙으로 나뉘어 있습니다만, 이 당시만 해도 화이트와 블랙은 없었고, 골드 드래곤은 태어나기 직전의 아드니엘 한마리 이외엔 아주 먼 옛날에 존재했었다는 정도로만 언급되기 때문에 당시로선 드래곤의 사회를 양분하는 세력의 수장이었던 셈이죠. 벨리타의 언급에 의하면 선한 드래곤으로, 벨리타 역시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플레이어 역시, 타고 있던 열기구가 와이번들에게 둘러싸여 곤란에 처해 있을 때 크루메나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크루메나를 처음 보게 됩니다.
크루메나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와이번들을 몰아내고, 이번에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었지만 언젠가는 도움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즉 언젠가 나 좀 도와달라 라는 말을 합니다. 사실 이렇게 대놓고 자기 나중에 위험해질 예정이니까 도와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만 봐도 좀 여의치 않긴 했습니다만, 그에겐 개뿔 도움도 안 줄 거 같은 벨리타도 도와줬다고 하니까 일단은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친절이 거짓이었음은 얼마 안 가 밝혀집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진짜로 정말 너무 미친듯이 금방 밝혀진다는 점입니다. 벨리타한테 돌아가서
'크루메나가 나 도와줬음' 'ㅇㅇ 근데 지금 곤란해 보이던데? 가서 도와줘'
이러고 갔더니 본색을 드러냅니다. 아니 진짜라니까요? 이렇게, 착하게 보이려고 했던 노력이 무색하게 크루메나는 (10분도 안되서) 자신의 사악한 본성을 드러내버립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이때 크루메나한테 신경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내가 크로우 크루아흐 통수를 쳤다니!'라고 울부짖으며 멘붕중이었죠. 아니 그건 그렇다치고 플레이어는 크로우 크루아흐를 문자 그대로 '코 앞에서' 봤던 전적이 있는데요, 어떻게 그걸 잘못 보고 볼트를 쏜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어쨌든, 나중에 레가투스를 찾아가 알게 되는 크루메나의 계획이란 것은 골드 드래곤의 감응자를 자신이 준비한 자로 내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골드 드래곤은 태어나는 즉시 그 감응자와 서로 반응하게 되며, 감응자의 성향이나 사상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죠. 이때 한가지 떡밥으로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퀘사르'라는 이름을 가진 선대 골드 드래곤의 감응자입니다만, 지금 이야기할만한 내용은 아니므로 차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하여튼 크루메나는 자신이 준비한 아트라타를 드래곤의 감응자로 만들고, 골드 드래곤을 그녀의 암흑으로 물들게 해 온건주의인 현재의 드래곤 사회를 뒤엎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리니드의 저주에 의해 이리아 대륙의 지배권을 박탈당하고 자르딘 지역에 유배된 드래곤들입니다만, 크루메나를 위시한 레드 드래곤들은 그런 처지를 계속 감내하고 있을 마음은 없었습니다. 허나 드래곤들의 주류는 저주를 자신들에 대한 형벌로 받아들이고 조용히 자르딘에서 살아갈 것을 선택한 블루 드래곤들이었죠. 크루메나는 바로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자신의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는 감응자를 선택해, 드래곤의 지배자라 할 수 있는 골드 드래곤을 자기 의지대로 조종하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뭐...... 별로 나쁜 스토리는 아닙니다. 네. 크로우 크루아흐가 거기 끼어서 '정치적'으로 희생됐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죠. 굳이 블루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의 대립관계 같은 걸 그리고 싶었다면 차라리 레가투스를 쓰지 그랬어.
3-3. 총평
크루메나의 의의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메인스트림 보스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밀레시안이 막타를 못친(.....) 보스라는 점입니다. 글라스 기브넨이나 크로우 크루아흐는 그렇다치고, C3로 갈 수록 보스들의 스케일은 점점 커져가지만 크루메나를 제외한 모든 보스들은 예외없이 밀레시안에게 쳐발리고 죽거나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크루메나는 비록 죽기 직전까지 몰리긴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서 밀레시안과 대치했습니다. 즉 제작진들의 견해는 G8 당시의 밀레시안은 충분히 괴물이지만 그래도 아직 혼자 드래곤을 잡을 정도는 아닌 듯.... 이라는 거죠.
아쉽게도 두번째는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인데요, 두번째는 바로 C1과의 결별입니다. C1이 종료되고 C2로 넘어오며 남아있었던 떡... 아니 연결고리였던 크로우 크루아흐와 루에리가, 크루메나의 존재에 의해 한방에 정리되어버린 거죠. 크로우 크루아흐는 죽음이란 형태로, 루에리는 퇴장이란 형태로 말입니다. 결국 루에리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드라마에 재등장하게 되었습니다만, 아직 루에리의 역할 자체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는 힘든 상태입니다. 그리고 크로우 크루아흐의 경우는 뭐..... 키트로 부활 같은 건 집어치웁시다.
사실 크루메나의 배경에는 아트라타와 타우네스의 연애담이라던가, 검은 머리 엘프의 진실에 대한 깊은 사연이라던가, 좀 더 많은 일들이 얽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것들 대부분이 별 결말이 나지 않은 상태로 끝이 나 버렸다는 거죠. 굳이 크로우 크루아흐와 루에리를 끼워넣지 말고, 타우네스와 아트라타, 그리고 이리니드의 진짜 정체를 소재로 좀 더 밀도를 높여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그나마 좀 더 나은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지나가 버린 건 어쩔 수 없죠.
4. 맺으며
메인스트림 보스 열전 두번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재미있게 봐 주셨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다음편에서는 드디어 C3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하면 한편에 몰아 쓰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멘탈분량이 버텨줄 지 모르겠네요.
그럼 멀지 않아 또 다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